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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제도에서 민주주의는 장점이 가장 많은 제도라고 한다.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반대 개념인 비민주주의 또는 반민주주의제도를 들 수 있는 데, 이의 종류는 절대군주 시대의 절대주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독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제도와 비교해 보면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제도 중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잘 보장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가치를 지닌 한 표씩의 권리를 가지며, 그들의 권리행사를 통한 결과에 따라 대표자를 선출하기도 하고 낙선시키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과정 중에서 다양한 의견을 통해서 충돌을 방지하고 협상으로 가장 좋은 안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이 민주주의 제도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도시 국가 아테네 등에서 실시된 제도로서 현재 사용하는 민주주의 의미인 Democracy(데모크라시)는 그리스어의 데모크라티아(dēmokratíā)에서 유래하는데, 데모크라티아는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êmos)와 권력, 지배를 의미하는 크라토스(krátos)가 합쳐져서 생긴 말이다. 즉, 민주주의(Democracy)는 민중의 지배를 뜻한다.
그러나 초기 민주주의는 폴리스라는 도시 국가에서35,000~40,000명의 자유 시민들이 아고라(Agora)라는 장소에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고 입법과 행정에 관한 결정은 유권자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유권자는 성인 남성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미성년자,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아테네의 주민이 총 25만에서 30만 명 정도였으나, 투표에 참석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인 유권자는 3만에서 5만 명 정도였다는 것이다.
아테네에서 운용되었던 직접민주주의는 비록 제한적인 유권자들이었지만, 그들 민중 스스로가 지배하는 결정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직접민주주의는 그때 이후에 광범위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 국가가 형성된 상황에서 고대 아테네 도시 국가에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여기에 현재 우리나라 등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하는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해 정치적 의사 결정을 내려줄 대표자들을 선택하고, 그 대표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대의 정부 (representative government)가 공동체의 주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 representative democracy)가 탄생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이 개별 정책에 대해 아테네 주민처럼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이 대의민주주의도 오늘날에까지 오는 동안 많은 굴곡이 있었다. 이것을 하버드대학교수 사무엘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이 주장한 제3의 물결에 의하면 제1 물결은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가 증가하였을 때고, 제2 물결에서는 2차 대전 후에 아시아ㆍ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발생하였으며, 한국이 속했던 제3 물결은 1974년 이후 세계화에 편승하여 지중해 유럽, 라틴아메리카, 태평양 아시아, 중동 유럽, 중앙아시아 등지에 민주화가 넘치는 물결처럼 전파되었다. 이러한 민주화 과정의 물결이 존재했으나, 각 민주화의 물결 사이에는 ‘역 물결’로 민주주의의 퇴보와 역행도 존재했었다.
특히 우리나라도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반응했던 국민의 용기와 희생이 컸다. 1980년 광주 민주화를 위한 5.18 항쟁과 1987년 6월의 6월항쟁(六月民主抗爭)을 통해서 국민이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물론 우리 민족은 대일본 제국주의를 상대한 광주학생운동, 3.1독립운동, 이승만 독재 정권 항거했던 4.19와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항한 부마사태 등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부단하게 항거(抗拒)하고 투쟁했던 숭고한 정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던 민족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모든 국민이 보통, 비밀 선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3권이 분리되어 정권이 여에서 야로 또 야(野)에서 여(與)러 여러 차례 교체된 오늘날 한국은 절차적이고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제도를 운용해 가는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 타협과 포용 및 협치 등의 민주주의 본질적인 요소를 살펴볼 때, 민주주의가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의심이 가는 면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총선 후에 형성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거대 야당과 2022년 대통령에 선출된 윤석열 정부의 대치 국면을 볼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된 상태다. 우리 정치가 당면한 민주주의 후퇴 양상은 양대 정당은 물론 기타 약소 야당의 정당 기능의 약화, 민주화 과정에서 확연히 표출되어 계속되고 있는 지역갈등 현상, 우리 국가의 지역과 계층 간 극심한 양극화, 정당의 대중영합주의 정책과 상대 진영을 적으로 간주하고 국정 동반자의 입장을 벗어난 정치행태 등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이며 정치학자인 스트빈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동료 교수인 대니엘 지블랫(Daniel Ziblatt)가 2018년에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 가(How Democracies Die, 박세연 옮김)’에서 그들은 합법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계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전제주의와 파시즘과 공산주의 또는 군사 통제와 노골적인 독재적 방법이 아닌, 정기적으로 선거를 통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는 예를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지만, ”미국의 경우에 헌법, 자유와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역사적으로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그리고 광범위하고 다각화된 민간 영역이 아마도 민주주의 붕괴라는 재앙에서 미국 사회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과 안보기구, 윤리위원회 등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이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법률을 뜯어고치고, 헌법을 수정하고, 심지어 선거권까지 박탈하면서 민주주의 실험실을 이제 전제주의 실험실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말한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혹은 군부 통치와 같은 노골적인 형태의 독재는 전 세계적으로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다. 최근에는 군사 쿠데타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폭력적인 권력 장악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국가가 장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어간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물론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에서도 선거로 추대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함께 민주주의 선도국인 미국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4년을 역임했고, 수 많은 범죄 의혹을 품고서도 재선을 향해 맹렬하게 움직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예를 보면, 미국에서마저 정상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위기를 맞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이번 제22대 총선 결과로 의회에서 절대 권력을 차지할 대한민국의 야당도 3권분립의 원칙인 입법부, 행정부와 사법부의 각각의 지위와 권위를 무시한 듯한 언행을 볼 때,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가 아닌지 매우 염려되는 시점이다. 모든 정치인과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는 데 관심과 의지를 보여야할 것이다.
필자, 정치학 박사 박채순 <저작권자 ⓒ 인디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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