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그의 인간적 품성과 정치적 성과... 또 다른 신화로 이어질까?

정성태 | 기사입력 2025/05/14 [06:31]

김문수, 그의 인간적 품성과 정치적 성과... 또 다른 신화로 이어질까?

정성태 | 입력 : 2025/05/14 [06:31]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12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5.5.12     ©연합뉴스

 

정치권 일각에서 김문수 대선후보를 띄엄띄엄 보는 경우도 있는 듯싶다. 그가 국민의힘 내에서 줄곧 비주류로 지내온 측면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를테면 강고한 자기 세력을 폭넓게 구축하지 않은 탓이다. 그리 보면 정치꾼 부류에겐 세력이 깡패일 수 있다. 혹은 그의 비곗살 없는 단백질 체형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헌신하며 이겨낸 삶과 정치적 여정을 보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서울대에 입학한 직후 청춘을 투신했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궤적은 가히 신화적으로 남아 있다. 당시 시대상은 지금의 한국 현실과는 너무도 많이 달랐다. 자유는 철저히 유린된 시공간이었으며, 노동 환경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기 일쑤였다.

 

시국사건으로 서울대 제적 후 공장에 위장취업해 미싱사 보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인간 내면에 자리한 깊은 슬픔과 한숨을 체득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힘든 이들이 겪는 속사정을 잘 안다. 때문에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제시한다. 작금 귀족노조가 누리는 온갖 특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김 후보가 1986년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노동운동 동료였던 심상정 은신처를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던 강인함은 하나의 전설로 회자된다. 그가 지닌 초인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감옥에 가더라도, 어떤 고문을 당하더라도 옳지 않은 것하고는 타협하거나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못박는다.

 

제15대 총선인 1996년. 그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했다. 당시 그 지역 박규식 의원, 전국구 박지원 의원 등과 겨루게 됐다. 더욱이 험지였다. 출발할 때는 두 자릿수 격차로 뒤지며 3위를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 모든 불리한 상황을 뚫고 2%p 차이로 신승하며 당선됐다.

 

그는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연임, 고용노동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이쯤되면 뭔가 부정축재를 쌓고 호사스럽게 생활할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봉천동 24평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내이자 노동운동 동료였던 설난영 여사는 소박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딸과 사위는 사회복지사로 봉사한다.

 

경기도지사 시절 온갖 반대를 뚫고 이룩한 GTX는 오늘날 교통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판교테크노밸리, 평택 삼성반도체 단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 메카가 됐다. 복지 정책의 대표격인 무한돌봄 또한 극빈가정을 위해 실현한 쾌거였다. 한센인들과 맺은 각별한 우정은 그의 인간적 품성을 가늠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말의 성찬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성과로 입증했다. 경제학도와 노동운동가로서 그것을 양립하지 않고 상호 유기적 결합체로 호흡할 수 있는 혜안을 터득했다. 늘 낮은 곳을 향했으며, 기꺼이 그들의 이웃이 되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할지, 이제 모든 것은 국민 개개인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이메일 : jst01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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