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손을 대세요(?)”

더페이지갤러리, 최비오 개인전 개최 … 관람자의 개입으로 완성되는 설치작품 등 기록하는 회화 신작 공개

김한솔 | 기사입력 2026/04/20 [10:00]

“작품에 손을 대세요(?)”

더페이지갤러리, 최비오 개인전 개최 … 관람자의 개입으로 완성되는 설치작품 등 기록하는 회화 신작 공개

김한솔 | 입력 : 2026/04/20 [10:00]

  ▲ 최비오 작가 설치 작품〈137 Silent Observers〉. 왼쪽 사진 위 붉은색 원안 카메라는 아래 돌들을 137초마다 사진을 찍는다. 돌을 움직인 관람객들은 방명록에 이름을 적으면 작가는 이 방명록을 회화적 그림으로 표현한다. 방명록 이름은 개인이름이어서 모자이크로 처리했음.                                                                                                            © 김한솔 기자


인디포커스=김한솔 기자보통 전시 작품에 대해 작품에 손을 대지 마세요라고 문구를 적어놓는다. 하지만 요즘 몇몇 작품은 작품에 손을 대세요라는 문구와 작품의 변화되는 모습을 관찰 또는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 최비오 작품에서도 이런 변화 작품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더페이지갤러리는 다음달 30일까지 비가시적인 시공간의 진동을 율동적인 선과 추상적 기호로 옮기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최비오 작가의 개인전 TIME INTERFACE이 열리고 있다.

 

2022년 더페이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 Observer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천착해온 시간의 개념을 회화와 설치 작업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시간은 화면 위에 재현되는 대상이 아니라 작품의 형성과 관람의 경험을 조직하는 조건으로 작동하며 전시 제목 TIME INTERFACE는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하나의 표면과 공간 안에서 교차하고 접속하는 상태를 가리키며 작품과 전시 전반의 구조를 함축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우주와 인간, 물질과 감각이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장(field)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동양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화면 위에 반복되고 중첩되는 선과 기호들은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감각의 흐름이 표면 위에 남긴 흔적의 구성이다.

 

이처럼 작가에게 회화는 사물을 묘사하는 평면이 아니라 미지의 시간과 에너지의 흐름이 머무르고 기록되는 장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시간을 단순히 주제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의 시작과 종료 시점, 재료의 물성, 신체의 행위, 우연의 개입을 통해 시간 자체가 작품 내부에서 작동하도록 설정한다. 실버(silver), 코퍼(copper), 블랙(black) 등 서로 다른 바탕을 가진 회화는 관람자의 위치와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표면을 드러내며, 시간의 변화와 지각의 차이를 함께 노출한다. 따라서 화면은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며 남긴 흔적을 담는 매체가 된다.

 

최비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업들을 ‘Time Signals’라는 이름 아래 묶는다. TIME SIGNALS: Responses (Tempo Code)연작에서 작가는 작업에 앞서 캔버스 뒷면에 날짜와 시간, 서명을 먼저 기록한다. 이 선행된 기록은 작업의 출발점을 표시하는 동시에 과거의 질문으로 기능하며 이후 화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행위는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전개된다. 화면 위에는 01의 이산적 단위가 배열되고 그 위에 선과 기호가 축적되면서 시간과 존재의 최소 조건이 구조화된다. 이 연작에서 회화는 이미 주어진 조건 위에서 신호를 감지하고 번역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TIME SIGNALS: Marks (Chronoglyphs)연작은 다른 방향에서 시간에 접근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그림이 끝날 미래의 시점을 미리 정한 뒤, 그 도래할 시간을 하나의 좌표로 받아들이며 화면을 시작한다. 표면 위의 기호들은 밑그림이나 사전 계획에 따라 배치되지 않고 한 번의 흐름 속에서 생성된다. 물감은 허공에 던져지거나 흘려 보내지고 중력과 재료의 성질은 작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일부 작업에서는 문장을 적은 종이를 태운 뒤 그 재를 물감에 섞어 화면 위에 흘려보내기도 한다. 이때 남는 얼룩과 흔적은 감정과 시간, 물질이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연작에서 화면은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구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의 좌표와 우연, 중력과 물질의 운동이 함께 작동하는 장으로 제시된다.

 

   ▲ 최비오 작가                                                                                               © 더페이지갤러리 제공

 

재미있는 작품은 전시장 중심에 놓인 관객 참여형 설치 작업 137 Silent Observers이다. 이 작품은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고 구조를 공간 안에서 실행하고 있다. 137개의 자연석은 137×137cm의 알루미늄 판 위에 있는데 이 숫자는 상징이 아니라 작업 전체를 조직하는 조건으로 적용하고 있다.

 

, 보통 작품은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글귀를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엔 없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손을 대면서(돌들을 움직이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더페이지갤러리 측은 이 작품에 대해 돌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관람객이 돌 하나를 옮기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작업의 변화에 개입하고 이 기록들을 다시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된다. 기록과 축적의 과정을 거쳐 이후의 배열을 바꾸는 요소가 된다면서 작품 위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가 137초 마다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 기록된 사진이 돌의 이동 영상 작업 137 Pulses로 이어지고, 마지막 배열은 다시 회화 Tempo Code: Initial Condition으로 전이되어 완성될 예정이다. 시간은 선택, 반복, 간격, 기록, 전이라는 과정을 통해 구조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가는 실시간 적으로 만들어지는 걸 통해서 시간을 구현하고 싶은 의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며 최비오의 회화는 고정된 이미지를 담는 평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신호와 감각의 진동, 기록과 응답, 관찰과 참여가 교차하는 매체로 확장된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이 외의 개별 작품에도 나열하는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를 통해 회화가 시간의 구조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캔버스 뒷면에 남겨진 시간의 기록, 미래의 종료 시점을 선행시키는 설정, 물감의 낙하와 중력의 개입, 관람객의 선택과 이동,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다른 형식의 작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모두 시간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이메일 : sds2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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