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삼국지 칼럼] 생면대책(生面大責), 주제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박상진(교육학 박사, 덕성여대 강사)

이성태 | 기사입력 2025/11/30 [22:20]

[박상진의 삼국지 칼럼] 생면대책(生面大責), 주제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박상진(교육학 박사, 덕성여대 강사)

이성태 | 입력 : 2025/11/30 [22:20]

▲ 박상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교육학 박사)     ©인디포커스

 

이번 주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혼란한 요즘, 굉장히 우려스러운 또 다른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여권의 내홍입니다. 사실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 간에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이번의 경우 차기 대권이 걸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실제로 언론지상에서 이에 관해 아주 노골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출처 : ‘성추행 피소’ 장경태 감싸는 청래 당() 친명은 탈당부터”‘, 20251128일 기사) 마땅히 영구 제명도 해야 할 마당에 오히려 감싸는 것은 대체 무슨 짓이며, 이걸 두고 당내에서 이견이 보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심지어 지지층이 모인다는 한 커뮤니티에서, 기사 내용처럼, 야당을 음해하는 터무니 없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은 당내뿐만 아니라 그 지지층마저 분별력을 잃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뿐 아니라 좌파와 그 지지층이 이런 분별력 상실의 망동을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주요 지도자였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일도 그렇거니와, 야당 시절부터 현 여권에서 성 추문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또한 그 지지층을 선도하는 스피커가 대놓고 방송 중에 성을 입에 올려놓고 입방정을 떨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입니다. 이 정도면 이번 장경태 사태를 두고 빠르게 정리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것인데, 오히려 이 일을 기화로 당내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는 것은 병증이 고황(膏肓)까지 미쳤음을 의미합니다. 윤리의식 부재에 더해 당쟁까지 격화된다면, 지금 여권은 지도력을 잃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인 상황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와중에 계엄 1주년을 앞두고 여야 각각 볼썽사나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권은 마치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무슨 이벤트 같은 것을 벌여 내란 프레임을 강고하게 만들려는 황당한 짓을 벌이고 있고, 야권, 특히 제1야당인 국민의 힘 내에서 지도부를 흔들면서 사과 운운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야권의 경우 겉으로 중도를 포섭하는 외연 확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 그것은 그저 권력의 철퇴를 피하겠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합니다.

 

, 모두 국민을 기만하고 집권 4개월 만에 흔들리는 나라는 안중에 없는 가당치 않은 짓거리입니다.

 

대학』 경문(經文)에서도 일의 선후를 아는 것이 도에 가까운 것”(知所先後, 則近道矣)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내란 프레임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고작 중도 확장 운운하며 사과 같은 썩은 정치적 쇼를 벌이는 게 중요합니까? 관세 협상은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고, 그 사이 악법으로 경제와 부동산은 무너지며, 국민이 그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정말 나라는 IMF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미 IMF는 한국 정부에 재정 준칙을 제정하라면서 긴축 재정을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가 중한 일인지 아직도 여야 모두 모른다는 말입니까?

 

이런 작자들이 지금 국민의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겠다면서 내란 가담자를 고발하라는 망동을 저지르는, 이른바 생면대책(生面大責)의 행태를 보이니 한심할 따름입니다.

 

이에 관해 삼국시대에 정면교사가 될 만한 일이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인물 중 한 명인 법정은 지략에 있어 견줄 자가 없는 위인이었지만, 동시에 작은 원한도 잊지 않고 타인에게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인배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일화 중에 집권한 뒤 보복으로 지새웠다는 얘기는 아주 유명하지요. 심지어 그 얘기가 당시 유비의 측근이었던 제갈량의 귀까지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촉서 법정전에는 이에 관해 제갈량의 답변이 나옵니다.

 

법정이 촉군태수, 양무장군이 되어 밖으로 성도와 경기(京畿)를 통솔하고 안으로 모사가 되었다. (그 후) 한번 받은 냉대와 눈을 흘긴 원한을 갚지 않음이 없어 죽거나 다친 자들이 여러 명이었다. 누군가가 제갈량에게 말했다.“법정이 촉군에서 너무 날뛰니 장군이 마땅히 주공(유비)에게 보고하여 그 위세를 억눌러야 합니다.”제갈량이 답했다.“주공(유비)이 공안에 계실 때 북으로 조조의 강대함을 두려워하고 동으로 손권의 핍박을 꺼려하며 가까이 손부인(손상향)이 휘하에서 변을 일으킬까 염려했소. 지금 나아가고 물러감이 거침없게 되었으니 법정이 보좌가 되어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하여 남에게 다시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소. 어찌 법정으로 하여금 그 뜻대로 행할 수 없도록 금할 수 있겠소?”(以正為蜀郡太守揚武將軍外統都畿內為謀主一飡之德睚眦之怨無不報復擅殺毀傷己者數人或謂諸葛亮曰:「法正於蜀郡太縱橫將軍宜啟主公抑其威福。」亮荅曰:「主公之在公安也北畏曹公之彊東憚孫權之逼近則懼孫夫人生變於肘腋之下當斯之時進退狼跋法孝直為之輔翼令翻然翱翔不可復制如何禁止法正使不得行其意邪!」)

 

이런 제갈량의 행보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엄법을 주장했던 제갈량의 이런 관용에 많은 계산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제갈량은 죽은 장송과 더불어 촉의 여러 문관 중 법정이 받은 억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앙앙불락하여 유비 편에 서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특히 이 두 사람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언과 유장을 보필했음에도 그 뜻을 펼 수 없었던 까닭은 같은 선후배 문관들이 이 혹자처럼 그들의 불손함을 먼저 보고 억누르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장송과 법정이 그런 일반적인 관점에서 다스리기에 매우 독특한 성향의 인물임을 알아보았고, 그만의 안목과 혜안에서 그들에 대한 통제를 자신하면서 되도록 숨통을 트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많은 권한과 자율을 주도록 하되 차차 책임감을 배우도록 격려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갈량이 이와 유사하게 위연, 양의 같은 인물도 부렸던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제갈량이 보인 이 신뢰가 법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고 반성하도록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갈량은 법정과 장송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재사(才士)인 만큼, 어느 정도 지나면 스스로 제어하여 겸양을 보이리라 믿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이엄과 그 아들 이풍의 경우에서도 확인되지요. 비록 이엄은 그 신뢰를 보답치 못했지만, 이풍은 승상부 장사로 충실히 그를 보좌했습니다. 또한 이 사례의 주인공 법정도 이후 제갈량의 깊은 뜻을 깨닫고 스스로 방정하게 행하여 죽기까지 유비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바로 한중 정벌전에서 조조를 꺾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제갈량이 그 이상의 빼어난 인물이자 인걸(人傑)임을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야 내에서 보이는 여러 정치적 사건들은 뛰어난 인물 없이 고만고만한 소인배들끼리 모여 대한민국을 탐낸 결과로 보입니다.

 

사마천은 일찍이 이런 현상을 예언이라도 하듯 아주 못한 정치는 형벌로 겁주는 것이고,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것”(其次整齊之最下者與之爭 ; 사기화식열전(貨殖列傳))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고소와 고발, 아니면 국민과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사람을 꾸짖는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로 장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요즘입니다.

<이메일 : formi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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