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영 작가, 전통을 입체로 새기다… “책 속에서 시대를 기억합니다”부산 해운대 채스아트센터, 5월 2일부터 8일까지 초대 개인전 <할아버지의 책장을 기억하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입체 책가도’의 독창적 미학전통 민화 장르인 ‘책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황지영 작가가 지난 5월 2일부터 부산 해운대 채스아트센터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할아버지의 책장을 기억하며’.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일관되게 매진해온 책가도 작업의 정수이자, 미니어처 같은 입체 오브제로 구현된 책장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통과 현대, 회화와 조형,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허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황지영 작가의 전시는 오는 8일까지 계속되며,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책가도(冊架圖)’라는 전통 민화 양식을 3차원 조형 예술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 정조 시대에 탄생한 민화 장르로, 책과 도자기, 향로, 문방구 등 문화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책장 안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그림이다. 학문과 지혜, 정신적 풍요를 상징하며 과거 지식인들 사이에서 권위와 자긍심의 대상이 되었던 이 형식을 황지영 작가는 오늘날의 시각과 감성, 기술을 접목해 새롭게 구현해냈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옛 것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오랜 시간 전통 민화의 조형성을 연구하며, 3D 프린터를 활용한 현대적 조형기법과 미니어처 공예 기법을 결합해 독창적인 ‘입체 책가도’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입체화된 책장 속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책들이 한 권 한 권 정교하게 꽂혀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작은 책들에 각각 제목이 또렷하게 적혀 있다는 것이다. 마치 활자로 인쇄한 듯한 정밀함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꼼꼼한 집념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한다.
황지영 작가의 예술 세계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아버지의 부재로 뉴욕에 이민을 간 그녀는 예술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러나 9.11 테러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귀국하게 됐다. 그 이후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회귀의식이 작업의 원천이 됐다. 특히 그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그리고 책장 속 오래된 책들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기억과 감성, 역사와 현실의 교차점에서 출발한다. 할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 평소 책을 가까이 하며 손녀인 황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작가는 “전통적인 책가도는 평면화된 구조였지만, 나의 작업은 그것을 입체로 불러내는 과정이다. 각 물건이 놓인 위치, 책의 질감과 색채, 오브제들의 조화에서 동양화의 단아함과 서양 미술의 사실주의적 세밀함이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책장 속에는 전통 도자기와 서양 고서, 현대 문구류까지 다양한 오브제가 함께 자리 잡고 있어, 시간과 문명의 이질적 요소들이 조화롭게 융합되는 미학을 드러낸다.
황 작가가 책가도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몸을 크게 다치면서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라고 한다. 황 작가는 투병 중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공간의 한계로 미니어쳐 같은 책가도 작업에 몰입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 책장에는 각기 다른 제목의 책이 수천 권이 그려져 있다. 한 땀 한땀 마치 수를 놓듯 책을 그렸다. 특히 책 제목을 쓸 때 마다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상상하는 즐거움까지 느꼈다고 한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여고를 나와 경성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황 작가는 대학 4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 주립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귀국해 경기 수원에서 약 20여 년 미술학원을 크게 운영하며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도 조금씩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황 작가는 교통사고로 무려 1년간 병원 신세를 졌고, 이후 모친이 있는 부산에 정착하여 현재 전업 작가로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동서양을 오갔던 그의 경험을 십분 살려 동양화인 민화에 서양화적 기법을 매칭 시켜 작품 세계에 천착 중인 황지영 작가는 LA, 마이애미, 뉴욕 등의 아트페어에 참가하면서 세계 미술계에서도 입지를 넓혀왔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벡스코와 코엑스 등 국내 주요 전시장뿐 아니라, LA 아트쇼, 마이애미 스쿱 아트쇼 등 개인전 50회 이상, 단체전 80회 이상 참여하며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특히2022년 뉴욕 전시 등 해외 유수 전시에서 완판을 기록하며 국제 미술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2023년에는 올해의 인물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았다. 특히 뉴욕에서의 최근 개인전에서는 모든 작품이 판매되어 한국 전통 미술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황 작가의 작품은 기존 회화의 경계를 넘는 예술적 시도들로 점철돼 있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책장 속에 놓인 오브제 하나하나를 직접 설계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한 뒤, 수작업으로 채색하고 조립한다. 도자기, 액자, 전등, 시계, 심지어는 연필꽂이나 화병 같은 일상적 오브제들까지도 그녀의 손을 거쳐 예술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끝없이 반복되는 인고의 시간’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얻는 정신적 집중과 내적 통찰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작업은 저에게 삶 그 자체입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정좌하고 오브제를 조형하고 채색하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내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와 같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꾸준히 다듬어왔다.
황지영 작가가 창조해낸 ‘입체 책가도’는 이제 단순한 미술 작품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록이며, 기억이며, 시대정신의 은유이자 알레고리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의 책장을 넘어, 각자의 공간과 기억 속으로 들어와 말을 건다. 정신적 풍요를 상징했던 조선의 책가도가 오늘날 다시금 현대인의 내면을 채우는 위로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민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며 “작품을 통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잠시의 안식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예술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와 시대에 말을 거는 창(窓)이다. 황지영 작가의 예술은 그 창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책장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 <저작권자 ⓒ 인디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메일 : jgkim17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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