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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b방송=김은해 기자]김원봉 장군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김학봉 여사가 향년 90세를 일기로 2월 24일 별세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 의백, 조선혁명간부학교 교장, 조선의용대 총대장,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광복군 1지대 지대장 겸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항일운동의 거두. 그러나 해방 후 친일경찰 노덕술에 모욕당한 뒤 쫓기듯 월북했다.
그곳에서 ‘중립화 평화통일방안’을 주장하다 김일성에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남쪽에 남겨진 약산의 가족에게 상상하지 못할 시련이 닥쳤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후 보도연맹 사건으로 약산의 형제 4명, 사촌 5명이 총살당했다.
김 여사의 부친은 연금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남편은 우익들에 의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김 여사도 약산의 월북으로 인해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모진 심문을 받았다.
약산의 형제 중 생존자였던 김봉철씨는 보도연맹사건으로 처형된 형제와 사촌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이유로 5.16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선고문에는 박정희가 직접 서명을 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연좌제의 족쇄가 씌워지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 여사의 아들들은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이런 가운데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에 연좌제 금지를 명문화 하면서 차남 김태영은 군 제대 후 유학 비자를 받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 후 의류업에 종사를 하는 가운데 공부를 하면서 경영학 박사를 획득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학회' 회장 및 '임시정부 건립위원회'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학봉 여사의 빈소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로 60 밀양 희윤요양병원에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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